문수정 1집 “CCM마루”

문수정의 ‘CCM마루’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내가 나인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기특하고 행복해서 내가 나인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울 때가 있다. 풍족하거나 부유해서가 아니다. 넉넉하게 무엇인가를 이루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안에 꿈틀대는 무엇이 있는데, 그것들을 품기 위해 나머지 부족한 것들을 기꺼이 감당하며 살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무엇, 내 생각에 그것들이 음악이 된다. 노래하고파 안달이 나는 에너지가 된다. 무엇일까, 그것이.
문수정은 가야금병창 전공자이다. 가야금을 타면서 판소리 창법으로 노래해 왔다. 그것이 자신의 감성세포와 조율되어 자연스러워 지기까지는 오랜 숙련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문수정은 그 담금질의 여정을 주저 없이 천착해온 아티스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그의 손가락은 열 두 줄이 되었고 성대에는 굳은살이 튼튼히 배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행적에 잇대어 살도록 이끌어 낸 기억이 그의 인생가운데 어떤 의미로 아름드리 자리 잡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몰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억이 내 인생에도 선연하니 굳이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열두 손가락과 굳은살 배인 성대가 그리스도의 행적을 노래하고파 안달이 났다는 사실이다. 문수정은 그런 자신이 기특하고 좋은 것이다.
그리스도 행적의 대부분은 줄 곳 갈릴리를 무대로 한다.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 그런 인생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기에 갈릴리를 거점으로 삼은 그리스도의 행적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음악으로 치면, 평탄하지 않고 굴곡이 심하며 극적 긴장이 매우 강한 구성이다. 그저 따라다니기만 해도 놀라운 기적에 휩 쌓이게 되고 추스르기 힘든 긴장이 발생하며 형언이 힘든 감동에 수없이 함몰되는, 그런 경험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더불어 갈릴리에 서 있으면, 그저 노래하고 싶어 안달이 날 수 밖에 없다. 심장 한복판을 꿈틀대는 그 뜨겁고 달콤한 것들을 확 드러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충동이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문수정은 그런 흥분상태인 자신이 너무도 다행스러운 것이다.
가야금은 적어도 이 땅에서 이 천년의 호흡을 품은 악기이다. 판소리는 백팔십살의 나이를 먹은 음악이지만, 그 안에는 이 땅의 모든 음악적 결실이 용해되어 있으니 가히 가야금에 준하는 오랜 생명력을 입은 음악이다. 상상해 보라. 사람들 곁을 떠돌다 사라진 음악이 이 땅에 얼마나 많았을까? 그 중에서 살아남은 음악, 살아남아 마땅한 능력과 이유를 품은 음악이 문수정을 사로잡은 가야금과 판소리인데, 그것이 무려 이 천년의 호흡이다. 그 긴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감수성이 덧입혀져 있었길래 문수정의 인생을 사로잡게 되었을까? 그 사람들 낱낱, 갈릴리 사람들 아니었을까? 고단했기에 가야금을 찾았고 외롭고 힘들었기에 판소리를 청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문수정은 갈릴리에 서서 이천년 전 그리스도의 행적을 노래하고 싶은 것이다. 이 천년의 긴 호흡을 잇대어 자신에게까지 와 닿은 열 두 줄의 손가락과 굳은살 두터이 배인 성대로 말이다.
다만 그것이 CCM이길 원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자신의 노래가 ‘오늘의 노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천년전의 예수를 ‘오늘’ 노래하고 싶고, 이천년의 호흡을 가진 국악을 ‘오늘’의 언어로 노래하고 싶은 탓에, 복음이 오늘의 감수성으로 육화된 음악적 거점(據點), 바로 그 CCM에 자신의 음악의 첫 둥지를 틀고 싶은 것이다. 문수정은 그런 자신이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다.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높으며 아직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지만 “나는 아무 공로 없으니 오직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이 고백이 그의 심장을 가득 채운 탓에 이 앨범이 되었다.
문수정의 열정이 빚은 이 앨범은 그래서 CCM이 한국전통음악의 호흡과 얼마나 긴밀히 조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또한 한국전통음악이 CCM을 만나서 동시대의 음악적 가치를 덧입는 아름다운 사건의 섬세한 빌미이다. 이를테면 한국적 CCM의 양식과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도전의지가 이 앨범의 이면을 장악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건은 감염 속도가 빠르다. 빠를 뿐만 아니라 지속력도 강하다. 문수정의 아름다운 열정이 주변을 움직인 덕분에 동일한 음악적 교집합을 이루며 살아가는 내가 그의 첫 시작을 에스코트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음악 동역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듯 명확한 단서를 갖는다.
감염환자는 나뿐만이 아니다. 21C 푸른나무 박지원 대표와 소리바다 양정환 사장 역시 문수정의 아름다운 열정 바이스러에 급속히 감염된 벗들이다. 아무리 봐도 그들의 감염정도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듯 탄탄한 대오형성이 불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확인된 감염환자는 셋.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찌될까? 이 세 사람의 열정이 덧입혀지면 문수정이 제안하는 한국적 CCM 바이러스는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되지 않을까?
앨범작업의 끝 무렵,‘CCM마루’라는 명패를 문수정에게 붙여주었다. CCM이 문수정을 만나 우리 땅에서 자라난 나무들로 엮은 ‘대청마루’에 놓이는 사건되라고, 맑고 청명한 하늘을 뜻하는 마루 음악이 되라고, 등성이를 이루는 험난한 산마루를 향해 용기있게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모든 일을 첫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이 모든 의미를 품고 있는 ‘마루’, CCM마루!....나는 이런 이름을 문수정에게 붙여주기 적당한 내 삶의 자리가 무척 기특하고 다행스러운 것이다.
류형선 (작곡가, 음반프로듀서, 국악 레이블 <사람과 음악‘조율’>대표)